[뉴스레터] [뉴스레터] 쉽고 편하게 여행할 권리 : 쉬운 정보가 함께 하는 여행의 의미 상세보기
[뉴스레터] [뉴스레터] 쉽고 편하게 여행할 권리 : 쉬운 정보가 함께 하는 여행의 의미
조회 719
홍보담당자 2024-06-19 16:03:49
쉽고 편하게 여행할 권리 : 쉬운 정보가 함께 하는 여행의 의미
여행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설렘을 안겨준다. 고단한 일상에 선물 같은 여행이 진짜 선물이 되려면, 모두가 쉽고 편하게 여행할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정보 접근성은 이러한 권리를 실현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배리어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은 누구나 제약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개념들이다. 이와 연결하여 쉬운 정보가 여행의 의미를 어떻게 풍부하게 만드는지, 모두를 위한 여행 환경을 조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글 _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학교 가는 길이 너무 멀어> 저자
무장애 여행의 의미
무장애 여행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어린이 등 모든 사람이 물리적·사회적 장벽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물리적 접근성뿐만 아니라, 정보 접근성, 서비스 접근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접근성을 포함한다. 즉 누구나 이동, 숙박, 관광지 방문 등의 여행 활동을 제약 없이 누릴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무장애 여행은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다. 장애인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휠체어 등 보조기구를 사용하여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고, 수어로 소통이 가능한 사람에게는 수어 통역이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음성이나 점자 정보가 정확하게 안내되어야 한다. 발달장애인에게는 여행지의 관광 정보, 사이니지 등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야 하고, 시청각 자극을 피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간 무장애 여행 환경 조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대중교통, 공공시설, 관광지 등의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과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지역에는 무장애 여행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특히 지방 소도시나 자연 관광지의 경우 접근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장애인이나 고령자의 여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여행 정보가 쉽게, 체계적으로 제공되지 않아 여행객들이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발달장애인 등 정보 약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정보 형태의 관광 정보가 거의 없고, 관광지 안에서 공간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사이니지도 부족하다. 실질적 ‘무장애’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여행을 둘러싼 모든 정보가 쉬운 정보로 제공되어야 한다.
쉬운 정보란 무엇인가
쉬운 정보란 말 그대로 ‘읽었을 때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말한다. 즉, 읽기와 이해가 어려운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고 명확하게 작성된 정보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는 2015년 11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활용되고 있으나,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약 30년 앞서 쉬운 정보가 발달장애인의 권리로 보장되었다.
모든 사람은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수천, 수만 건의 정보를 마주한다. 그중 모르고 넘어가도 되는 정보도 있고, 잘못 이해하거나 모른다면 손해나 피해를 보는 중요한 종류의 정보도 있다. 그러한 정보가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하도록, 공평하게 제공되고 있는가? 예를 들어, 근로계약서는 취업하는 사람 모두가 작성하는 중요한 법적 문서다. 하지만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면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여러 표현 - 4대보험, 제수당, 상여금, 연차유급휴가 등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필자가 만난 많은 발달장애인은 본인의 노동 조건을 명확히 이해하고 사인하는 것이 아니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물어보기 불편해 ‘그냥’ 사인한다고 했다. 이렇듯 일상에서 접하는 정보는 생각보다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인이 일상에서 접하는 어려운 정보를 찾아, 이해하기 쉬운 정보로 만드는 일을 한다. 근로계약서의 경우, 어려운 표현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보조적 이미지를 더해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 ‘쉬운 근로계약서’를 통해 노동자로서 본인이 회사와 하는 약속을 스스로 이해하고 사인하는 발달장애인은 어려운 근로계약서를 마주했을 때와 전혀 다른 감정과 경험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일상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채우며 살아가는 데 정보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내 앞에 주어진 여러 가지 선택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온전한 자기결정을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쉬운 정보는 발달장애인이 원하는 것을 선택, 결정할 수 있도록 돕고 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일로 삶을 채워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코로나19가 세상을 가득 채우던 시절, 발달장애인 분들에게 어떠한 주제, 어떠한 종류의 쉬운 정보가 필요한지 조사한 적이 있다. 많은 발달장애인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싶은데, 배달앱 사용이 너무 어렵다. 배달앱 사용하는 방법을 쉽게 알려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외출도 어렵고 식사할 수 있는 인원도 제한되어 있던 시기였다. 발달장애인 몇 분을 초대해 스마트폰을 들고 회의를 했다. 배달앱을 다운로드하는 것부터 회원가입, 실제 주문까지 배달앱 사용을 직접 해보며, 어느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관찰하고 확인했다. 이를 통해 회원가입부터 결제까지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모든 과정을 단계별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자료를 만들었다. 자료를 보면서 누구나 최대한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가장 간편한 주문 경로를 안내하는 형태로 구성하였고, 단계별 앱 화면 이미지를 그대로 자료에 활용해 실제와 가깝게 담았다. 현 단계에서 어디를 눌러야 할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앱 사용과 관련된 생소한 용어들에는 쉬운 설명을 더했다. 많은 발달장애인이 자신만의 속도로 설명서를 보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게 된다.
어떻게 만들어야 쉬운 정보가 되는가
쉽다는 것은 객관적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주관적, 상대적 개념이다. 정보를 접하는 사람마다 문해 수준, 지식의 깊이, 관심사, 경험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정보를 두고도 쉬운지, 그렇지 않은지 설왕설래가 오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쉬운 정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국내외 수많은 쉬운 정보 관련 가이드를 둘러보면, 쉬운 정보가 되기 위한 요소들이 정의되어 있다. 즉, 쉬운 정보가 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지향점과 지양점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정보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글이 쉬워져야 한다. 전문용어, 한자어, 외래어 등의 어려운 표현을 최대한 덜어낸, 쉬운 일상의 어휘를 사용하고, 정보 사용자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짧고 간결한 문장을 지향한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고, 비유·은유적 표현 대신 직관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일러스트, 아이콘, 사진 등과 같은 시각적 자료를 더해 정보 이해를 돕는다. 내용뿐 아니라 서체, 글자 크기, 자간, 어간, 행간, 글줄 길이, 정렬 방식 등 정보의 외형을 구성하는 요소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보의 복잡성을 줄이고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종합적인 전략이 수반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 사용자의 기준에서 쉬워져야 하므로 제작 과정에서 사용자의 관점과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쉬운 정보 제작 과정에는 정보 사용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소소한소통의 경우,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직접 감수를 받는다. 쉬운 글과 이미지, 디자인 등이 어느 정도 만들어진 자료를 가지고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회의를 하는 것이다. 글이 충분히 쉽게 이해되는지,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는지, 이미지의 의미는 온전히 전달되는지 등을 확인하고,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은 것은 더 쉽게 바꾸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듯 쉬운 정보를 만드는 시간은 정말 쉬운지, 더 쉬워질 수는 없는지의 고민과 선택의 과정이 수반되는 긴 여정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여행을 보내는 시간에는 많은 선택과 결정이 반복된다. 여행지를 고르는 것부터 식당과 숙박지 선택 등 낯선 공간에서의 의사결정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보라는 것은 정보를 탐색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이 시대에서 정보‘력(力)’은 힘이자 돈이자 권리다. 어떤 정보를 얼마큼 이해했는지,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결과를 얻는 것이다.
여행에 쉬운 정보가 더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관광 명소, 식당, 숙박 시설 등의 특징, 위치, 접근성 정보 등을 쉬운 정보로 제공해야 한다. 공항, 기차역, 버스 등은 어떻게 이용하는지, 예매는 어떻게 하는지 쉽게 안내되어야 한다. 예약 시스템이 있다면 그 과정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온라인 예약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전화로 예약할 수 있는 옵션도 함께 주어져야 한다.
여행지의 표지판, 안내판 등 사이니지도 쉬워져야 한다. 낯선 사람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고 공간의 의미를 담은 일러스트, 아이콘을 더해 글을 모르는 사람도 공간 파악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박물관, 미술관처럼 전시물과 그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는 경우에는 전시 정보, 해설도 쉬운 정보로 제공되어야 하며, 식당의 메뉴판은 음식의 재료나 맛 등을 상상할 수 있도록 설명이나 이미지 등이 더해져야 한다.
쉬운 정보는 어디에서나 존재해야 한다. 소소한소통은 일상의 작은 순간에도 소통의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명을 지었고, 그 사명을 따라 발달장애인 등 정보 약자의 일상에 집중하며 쉬운 정보를 선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여행도 그러하다. 여행은 바쁜 삶에 호흡을 가다듬고 일상을 살아갈 충전이 되어준다. 어렵고 복잡한 정보와 과정으로 설계된 여행지는 그러한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모두가 쉽고 편한 여행’,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쉬운 정보가 필요하다. 이는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언어 발달 단계에 있는 어린이, 감각과 인지 기능이 퇴화하는 어르신, 한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말이 낯선 외국인 등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는 정보다. 모든 사람이 온전히 즐기고 향유하는 여행이 되기 위해, 그곳에 쉬운 정보가 있어야 한다.